역사 속의 이강주
  • 한국(韓國)의 명주(名酒) 문헌 속의 이강주
    한국(韓國)의 명주(名酒)는 전 고려대 식품공학과 교수이자 식품영양학의 권위자인 유태종 박사가 1978년에 출간한 저서로서 우리나라 술의 종류, 문화, 역사등을 기록하고 있다.
    전라도 전주가 이 술의 명산지로 알려졌는데 황해도 지방에서도 많이 만들어졌다. 황해도 봉산지방은 배의 명산지로 유명했는데 배의 껍질이 얆고 배맛이 소위 봉산 참배맛이라고 할 정도로 단맛이 많았다고 한다. 배만 그대로 넣으면 배는 녹아서 많은 수분이 나온다. 여기에 생각을 넣으면 생강의 독한 맛이 조화되어 달콤하고 매콤하 맛이 돌게 된다. 이강주도 찹쌀을 넣고 가루누룩을 넣어 다시 제조한 후 오래 두어야 제맛이 나는것으로 알려져있다.
  • 황성신문 기사 속의 이강주
    황성신문은 1898년 창간한 민간자본 신문으로서 국한문혼용체가 쓰였다. 아래 내용은 1902년 05월 31일 황성신문 衣廛後東谷金性煥家 平壤牛 광고기사 발췌문이다.
    衣廛後東谷金性煥家에서 平壤牛酒梨薑酒甘紅露白燒酒을 多貿하였기로 玆以仰佈하니 各須僉君子는 來購하십시오
  •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 당시 우리나라 대표술로 이강주 참여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은 1882년(고종 19년) 조선과 미국이 국교와 통상을 목적으로 체결한 조약이다.
    그런가 하면 전라 - 황해의 이강고와 같은 자주류는 고종 19년 2월에 있었던 한미통산조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미국을 대표한 전권대사(슈펠트)와 청국사신이 합석한 만찬의 자리에서 우리나라 쪽에서 내놓은 음식으로 전복, 백자(栢子), 구기자차, 약반(藥飯), 조악(助岳), 정과(正果), 원소병(圓小餠), 다식등과 함께 동참되고 이로 인하여 우리나라 음식물에 매혹당했던 일들은 이강고와 같은 전통주가 있었고, 또한 자랑할줄 아는 주체의식이 있었던 사건이 아닌가 한다.
  •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 문헌 속 이강주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은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이 1937년 1월 30일부터 9월 22일까지 매일신보에 160회에 걸쳐 연재한 ‘조선상식’을 재정리하여 1946년에 발행한 세시풍속 상식사전이다. 조선의 풍속과 전통을 재인식시키고 조선의 마음을 열어주기 위하여 문답형식으로 쉽게 쓴 것으로, 저자는 술의 격을 로(露),고(膏),춘(春),주(酒)순으로 구분하면서 전북 전주의 이강주(梨薑酒)를 죽력고(竹瀝膏), 감홍로(甘紅露)와 함께 조선 3대 명주로 꼽았다.
    문: 우리나라 술의 유명한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답: 가장 널리 퍼진 것은 평양의 감홍로(甘紅露)니 소주에 단맛나는 재료를 넣고 홍곡(紅穀)으로 밝으레한 빛을 낸 것입니다.
    그 다음은 전주의 이강고(梨薑膏:배나무 이, 생강 강, 살찔 고)니 뱃물과 생강즙과 꿀을 섞어 빚은 소주입니다.
    그 다음은 전라도의 죽력고(竹瀝膏)니 푸른 대를 숯불 위에 얹어 뽑아 낸 즙을 섞어서 고은 소주입니다.
    이 세 가지가 전날에 전국적으로 유명하던 것입니다. 이 밖에 금천의 두견주, 경성의 과하주처럼 부분적으로 또 시기적으로 좋게 치는 종류도 여기저기 꽤 많으며 뉘집 무슨 술이라고 비전(秘傳)하는 법도 서울, 시골 퍽 많았습니다마는 근래 시세에 밀려 대개 없어지는 것이 매우 아깝습니다.
  • 조선주조사(朝鮮酒造史) 문헌 속의 이강주
    조선주조사(朝鮮酒造史)는 일제강점기인 1935년에 조선주조협회(朝鮮酒造協會)에서 발행한 자료집으로 조선의 술에 관한 역사와 현황을 도표와 사진등과 함께 수록하고 있다. 술의 종류와 제조법, 생산과 수급, 주류의 거래, 주조업의 개선에 대한 시설, 주조법의 변천 등을 자료를 바탕으로 기술하였으며, 총 6장의 목차 중 제 2장 술의 종류와 제조법에는 청주, 조선약주를 비롯한 23종류의 술의 제조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第二章 酒の種類と製造法(제2장 술의 종류와 제조법)
      第一節 種類と品質(종류와 품질)
    第二節 製造方法(제조방법)
    이강주는 담황갈색의 감미 주정음료의 한 종류로 조선의 상류사회에서 애용되어 오고 있다.
    제법은 외피를 제거한 배 5개와 생강 50급을 진유제어판(眞鍮製御板)으로 갈아 뭉개어 이것을 울금 및 계피의 조분 각 18.7g을 소주와 함께 끓여서 침출한 용액 1~2홉을 포대에 넣어서 소주 1말에 750g의 설탕을 가한 액중에 투입하여 2~3시간 방치하면 울금에서 오는 황색과 계피, 배, 생강에서 울어 나오는 특이한 향기의 술 약 9되 5홉을 얻을 수 있다.
  •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 문헌 속 이강주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은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위관 이용기(李用基, 1870~1933)가 발행한 요리책으로, 19세기 실학자 서유구의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중 음식을 다룬 8지(志) 정조지(鼎俎志)를 뼈대로 서양과 중국 일본 요리법까지 총망라하였으며 한국 최초로 요리책에 색을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제목에서의 ‘조선무쌍’이란 말은 조선요리 만드는 법으로서는 이만한 것은 둘도 없다(無雙)라는 뜻이다.
    이강고(梨薑膏) 주방문(酒方文)
    배(梨鵝)를 껍질 벗기고 갈아 즙을 내어 전대(錢帶)에 짜 찌끼는 버리고, 생강도 집을 내고 꿀에 타서 소주병에 들어붓고, 그 병을 끓는 물에 넣고 중탕하였다가 꺼내어 쓰느니라.
  •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문헌 속의 이강주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는 정조 때의 학자 홍석모(洪錫謨, 1781~1857)가 음력 정월부터 12월까지 한국의 연중행사·세시풍속에 관한 것을 그 유래부터 자세히 기록한 책으로, 1849년경 당시에는 삼짇날(음력 3월 3일)을 기하여 전국적으로 유명한 소주들을 제조하였고, 전문적으로 술 만드는 양조장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술 파는 전문 집단도 있었다고 한다.
    동국세시기 3월 월내
    술 집에서는 과하주(過夏酒)를 빚어 판다. 술 이름으로는 소국주(小麴酒), 두견주(杜鵑酒), 도화주(桃花酒), 송순주(松荀酒) 등이 있는데 모두 봄에 빚는 좋은 술들이다. 소주(燒酒)로는 서울 마포 공덕동에서 대흥동 사이에 있는 동막주변에서 만드는 삼해주(三亥酒)가 최고 좋은데 수천, 수백 독을 빚어 낸다. 평안도 지방에서 쳐주는 술로는 감홍로(甘紅露)와 벽향주(碧香酒)가 있고, 황해도지방에서는 이강고(梨薑膏), 호남지방에서는 죽력고(竹瀝膏)와 계당주 (桂當酒), 충청도 지방에는 노산춘(魯山春) 등을 각각 가장 좋은 술로 여기며 이것 역시 선물용으로 서울에 올라온다. 過夏酒以賣 酒名小麴杜鵑桃花松荀皆春釀之佳者 燒酒則孔德甕幕之間三亥 酒 甕釀千百 最有名稱關西甘紅露碧香酒海西梨薑膏湖南竹瀝膏桂當酒湖西 魯山春皆佳品亦有餉到者
  • 계산기정(?山紀程) 문헌 속 이강주
    계산기정(?山紀程)은 조선 순조 때의 문신 이해응(李海應, 1775~1825)이 동지사(冬至使, 동지에 중국에 보내던 사신)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의 연경(燕京, 지금의 북경)을 견문하고 지은 기행문으로, 책의 제목에 등장하는 ‘계산(?山)’이라는 말은 연경을 지칭한다. 1월 22일 기행문에서는 청나라 문인 왕자정(王?庭)이 저자를 집으로 초대하여, 유인천(劉引泉)이란 인물을 소개해 줌과 동시에 술을 권하였다는 내용과 함께 저자가 조선 최고의 술 중 하나로 이강주를 추천하고 있다.
    22일 임자 二十二日 壬子
      큰 눈. 옥하관에 머물렀다 大雪 玉河館留
      자정이 베푼 술자리에 인천 유소숙과 부를 짓다 ?庭酒席 與引泉劉紹叔共賦
    유인천은 ‘마음속으로 보고 싶은 지 오랬는데, 한번 유람하지 못한 것이 유감입니다. 그리고 귀국에 제일 좋은 술은 어떤 것이 있는가요?’라고 묻는다. 내가 ‘천일주(千日酒), 백화주(百花酒), 이강주(梨薑酒), 죽역주(竹瀝酒) 등이 모두 좋은 술이지요’라고 하니, 유인천은 ‘그 이름만 들어도 같이 마신 바나 진배없소’라고 한다. 未能一遊爲憾。貴邦酒最高者云何。余曰。千日酒,百花酒,梨薑,竹瀝之名。皆是味佳者。劉曰。覽此。同飮過一樣。
  • 곡운공기행록(谷耘公紀行錄) 문헌 속의 이강주
    곡운공기행록(谷耘公紀行錄)은 곡운(谷耘) 권복(權馥, 1769~1833)이 벼슬살이를 하면서 전라좌도와 경상좌도에 경시관(京試官)으로 출장 근무 중 보고 들은 일과 순안(順安)으로 유배되어 오가며 체험한 여행기록과 타인의 작품인 국한문 혼용의 가사 1편을 부록한 기행문집(紀行文集)이다.
    4일, 병영에서 새벽밥을 보내왔다. 본관 사또 또한 새벽밥을 보내왔고 아울러 일행에게도 먹을것을 보내왔다. 날이 밝기 전에 출발하였다. 본관 사또는 말 2필과 종 1명을 빌려주었다. 말에 올라 떠날 차비를 마쳤는데 본관 사또가 인사하러 왔다. 그래서 말을 세운 채 작별하였다. 중화 생양관 50리 읍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황감 현감은 전 20냥, 이강고(梨薑膏) 7선, 쌀 새우젓 5되, 민어 2미, 석어 3속, 의이 5되, 청주 3되, 풀 5근, 반찬합 1개를 전별하며 보내왔다.
    병사는 이강고(梨薑膏) 5선, 포 2첩, 민어 2미, 쌀새우젓 5되, 풀 4근을 전별하며 보내왔다.
    우후는 이강고(梨薑膏) 4선, 포 2첩, 전별하며 보내왔다.
    19일 아침 병사가 방문하였다. 본관 일행의 조반을 보내주었다 ...중략... 병사가 이강고(梨薑膏) 5선, 포 2첩, 편강 2근, 풀 3근, 황다 20첩을 보내며 전별하였고 독교를 빌려주었다.
    황강에서 청주 3선, 새우젓 5되, 반찬합, 전 20냔을 전별하며 보내왔고, 서울에 도착할 떄까지 말 3필, 사람 4명을 빌려주었는데 아울러 사람과 말의 노자도 주었다.
    우후는 이강고(梨薑膏) 3선, 육촉 80병을 주며 전별하였다.
  • 경수당전고(警修堂全藁) 문헌 속 이강주
    경수당전고(警修堂全藁)는 조선후기 문인 화가인 경수당(警修堂) 신위(申緯, 1769~1845)가 43세때인 1811년 이후 지은 시만을 연대순으로 편찬한 시모음집이다.
       十年不見申羲世 驛使南來信息傳
       ?髮知應如我白 簿書何以坐談玄
       梨薑竹露?情味 圖?詩章喚夙緣
       聚散悲歡人世事 不堪重理意茫然
       10년동안 보지 못한 신순으로부터 역리 통해 남쪽에서 편지가 왔네
       살쩍과 머리털 틀림없이 나처럼 흴 것인데 어떻게 문서로 심오한 이치를 말할런가!
       이강주와 죽로차의 정취와 맛에 취하고 그림과 시문에선 오래된 인연 떠올리네
       만났다 헤어짐과 슬프고 기쁨은 인간세상 일이니 무거운 이치 견디지 못하고 마음 아득하도다
    곡성현감 희세 신순을 보지 못한것이 또 10년인데, 이강주와 죽로차로 보내고 아울러 버선감을 보내고서 나에게 묵죽도와 제화시를 요구해왔다. 1천 리에 체면을 차린 뜻이 매우 은근하기에 병중에 억지로 붓을 들고 그리고 쓴 다음 이 시로 화답을 구한다. 穀城?申羲世 不見且十年 送梨薑酒 竹露茶 兼送襪材 求余墨竹 又要自題詩 以爲千里替面 意甚殷勤 病中?筆 且?且題 且以此詩求和
  •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문헌 속의 이강주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는 조선 후기 실학자인 풍석 서유구(徐有?, 1764-1845)가 만년에 저술한 농업 백과사전으로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라고도 한다. 농사부터 음식, 의류, 건축, 건강, 의료, 의례, 예술, 지리, 상업 등 조선 및 동아시아의 의식주 문화가 집약되어 있는 유서(類書)로서 도회지가 아닌 시골의 삶에 필요한 모든 지식을 16(十六)개 범주로 체계화하였다.
    이강고(梨薑膏) 주방문(酒方文)
    아리(鵝梨, 거위의 깃털처럼 희고 향과 맛이 진하며, 껍질이 얇고 즙이 풍부한 배)의 껍질을 벗기고 돌 위에서 갈아 즙을 고운 베주머니에 걸러서 찌꺼기는 버리고, 생강도 즙을 내어 밭친다. 배즙, 좋은 꿀 적당량, 생강즙 약간을 잘 섞어 소주병에 넣은 후 중탕하는 방법은 죽력과 같다.
  • 백운필(白雲筆) 속의 이강주
    백운필(白雲筆)은 조선후기 문인 이옥(李鈺, 1760~1815)이 지은 필기잡록(筆記雜錄)이다. 필기잡록이란 특정한 형식 없이 여러 이야기를 잡박(雜駁)하게 기록한 글을 말하며, 여기에서는 저자가 창작한 시문(詩文)이나 민간에서, 혹은 벗을 통해서 들은 일화, 자신의 일상적 기록 등도 섞여 있어 또 다른 글쓰기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가래를 낫게하는 죽력고(竹瀝膏), 입술에 딱 붙는 이강주(梨薑酒), 일년 백일에 두 번 끓이는 삼해주(三亥酒), 두견주(杜鵑酒), 송순주(松荀酒) ...
    이강고(梨薑膏)도 너무 독할까 두렵네. 빌린 어류로는 오직 전복이 제일이고
  • 경도잡지(京都雜志) 문헌 속의 이강주
    경도잡지(京都雜志)는 조선 영조·정조 때의 실학자인 문인 유득공(柳得恭, 1749-1807)이 한양의 풍속을 정리하고 설명한 세시풍속서로서 이후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영향을 끼쳤다.
    여러 가지 술
    3월에 빚는 술은 소국주(小麴酒) 두견주(杜鵑酒) 도화주(桃花酒) 송순주(松荀酒) 과하주(過夏酒)등이 있으며 서울 공덕의 옹막(현 마포구)의 삼해주(三亥酒)가 유명했다. 그 밖에 평안도에 감홍로(甘紅露)와 벽향주(碧香酒)가 있고 황해도에는 이강주(梨薑酒), 호남에는 죽력고(竹瀝膏) 계당주(桂當酒) 충청도에는 노산주(魯山酒)등이 가장 좋은 술이다.
  •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문헌 속의 이강주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는 조선 영조 때 내의(內醫) 유중림(柳重臨, 1705~1771)이 홍만선(洪萬選, 1643~1715)의 『산림경제(山林經濟)』를 증보하여 엮은 농업 고서이다.
    이강고(梨薑膏) 주방문(酒方文)
    배를 껍질 벗기고 기와돌 위에 갈아 즙을 내어 고운 헝겊으로 밭쳐 찌꺼기를 버리고, 생강도 즙을 내어 밭쳐 찌꺼기를 버린다. 이 두 가지와 흰 벌꿀을 섞어 소주병에 넣은 후 중탕한다.
  • 봉산탈춤 6 과장(양반 과장) 속 어구에 등장하는 이강주
    봉산 탈춤은 황해도 육로 교통의 길목인 봉산에서, 주로 상인과 이속(吏屬)이 중심이 되어 공연했던 우리 고유의 전통 연극으로, 그 중 양반 과장에서는 양반의 거짓된 위엄과 이를 야유, 공격하는 말뚝이의 대립을 통해 양반의 허위와 지배 체제의 모순을 풍자하고 있다.
    말뚝이: 샌님 삐뚝한 놈도 없고 보니 낙향사부(落鄕士夫)라, 서울 본댁(本宅)을 찾아가니 샌님도 안 계시고 종가(宗家)집 도련님도 안 계시고 마나님 혼자 계시기로 벙거지 쓴 채 이 채찍 찬 채 감발한 채 두 무릎을 꿇고 하고 하고 재독으로 됐습니다.
    생원: 이놈, 뭐야!
    말뚝이: 하하, 이 양반 어찌 듣소. 문안을 드리고 하니까 마나님이 술상을 차리는데 벽장문(壁欌門)을 열고 목이 길다 황새병(甁) 목이 짧다 자라병이며, 홍곡주, 이강주 내어놓자 앵무잔(鸚鵡盞)을 마나님이 친히 들어 잔 가득히 술을 부어 한 잔 두 잔 일이 삼배(一二三杯)를 마신 후에 안주를 내어놓는데 대양푼에 갈비찜 소양푼에 제육(猪肉), 초, 고추, 저린 김치, 문어(文魚), 전복 다 버리고 작년 팔월에 샌님 댁에서 등산(登山)갔다 남아온 좆대갱이 하나 줍디다.
    생원: 이놈, 뭐야!
    말뚝이: 아, 이 양반 어찌 듣소. 등산 갔다 남아온 어두일미(魚頭肉尾)라고 하면서 조기대갱이 하나 줍디다 그리 하였소.
    양반들: (합창) 〈조기대갱이라네 〉(굿거리곡으로 일제히 춤)
    생원: 쉬이. (가락과 춤 멈춘다.) 이놈 말뚝아.
    말뚝이: 예에. 아 이 제미를 붙을 양반인지 좆반인지 허리 꺾어 절반인지 개다리 소반인지꾸레미전에 백반인지 말뚝아 꼴뚝아 밭 가운데 최뚝아, 오뉴월에 밀뚝아, 잔대뚝에 메뚝아, 부러진 다리 절뚝아, 호도엿 장사 오는데 할애비 찾듯 왜 이리 찾소?
언론에서 본 이강주
  • 우리술 외길 인생, 명주의 명맥을 잇다!- 주간신문 idweekly 2014/02/26
  • [한가위 선물] 전북 대표 술...청와대도 인정한 '전주 이강주'- 전북일보 2007/09/16
    이강주는 조선조부터 민속주로서 면면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고급 술로 상류사회에서 즐겨마시던 술로 유명하다.
    청와대에서도 작년에 이어 이번 추석선물로 선정되기도 한 이강주는 전통소주에 배와 생강, 계피, 벌꿀을 첨가해 빚었다.
    증류 과정을 거쳐, 오래 둘수록 둥근 맛을 자랑하며 마신 후에도 전혀 머리가 아프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063-212-5765)
    맑은 물로 빚은 이강주는 알콜도수 22% 수출용을 비롯해서 혼수(결혼)선물세트 등이 다양한 도자기병에 담겨 백화점, 면세점, 대형할인매장에서 판매되고 있고, 우편주문도 가능하다.
    주도가 높아 오래 두어도 안전하며 오래 갈수록 맛과 향이 좋아지는 매력이 넘치는 술이다.
  • 농업인의 날 맞아 대통령상 수상한 ‘전주 이강주’- 전북일보 1999/01/07
    전주이강주(대표 조정형 57)가 우수민속주 제조업체로서는 지난연말 농업인의 날을 맞아 전국 최초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이강주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가양주를 현대 주조기술과 접목, 전통성을 최대한 살리면서 주질이 뛰어나 세계어느 제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제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강주 대표 조정형씨는 지난 64년 전북대 농대에서 발효학을 전공한 후 지금까지 우리 술 연구와 우리술 찾기에 전념해온 자로 지난 87년 전라북도로부터 향토 술담기 무형문화재 6호로 지정받았다. 또 96년에는 농림수산부장관으로부터 전통식품 제조명인 9호로 지정받았다. 이강주 탄생은 조씨가 대학에서 발효학을 전공하면서부터 태동됐다. 대학 졸업후 조씨는 국내유수의 소주회사에서 25년간 연구실장, 생산부장으로 근무하면서 이론과 실기를 겸비, 조상대대로 내려오던 이강주를 전통적인 제조 방법으로 재현에 성공했다.
    결국 조씨는 우리것을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91년 전주 이강주를 창업했고 당시 1억 9천 5백만원이던 매출이 97년 22억 3천 5백만원에 달하면서 전통주로 완전히 자리매김했다. 특히 원료를 주변의 생산농가로부터 직접 구매하고 농한기 유휴노동력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농가소득증대 및 지역경제 발전에도 한몫하고 있다.
    지난 97년에는 공장 및 생산라인을 증설, 내수는 물론 해외시장 주문물량에 대처함으로써 97년 일본 미국등 해외시장에 3만불의 수출실적을 올리기도 해 세계적인 명품으로 발돋움했다.
    이강주가 이같이 우수한 전통주로서의 자리를 굳히고 있는 비결은 제품생산에 필요한 효모 곡자등을 자체 연구실을 통해 직접 배양하여 사용. 이강주만의 최고의 품질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조씨는 주류 제조기술의 최고 권위 자격인 주조사면허를 소지하고 있으며 그간의 연구결과를 정리한 다시 찾아야할우리술을 저술했다. 또 술을 빚는 각종 전통도구와 용기 등을 모아 소규모로 민속박물관을 만들어 상시 전시하는 등 전통문화 계승발전에도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다.
  • 대통령상 수상 이강주 기능보유자 조정형씨- 전북일보 1999/01/04
    향토술담기(이강주) 기능보유자로 전북도 지정 무형문화재 6호인 조정형씨가 구랍31일 농어업인의 날 기념 대통령상을 수상했다.조씨는 이강주를 통해 우리 것의 우수성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우리 농산물의 가옹 생산을 통해 농가소득 증대 및 외화획득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 대통령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조씨는 구랍 31일 전주 시청 강당에서 김완주시장으로부터 상을 전수 받았다. 민속주 이강주는 내 자신의 것이 아니며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으로 후손에게 물려줄 소중한 무화유산이다는 정신으로 술을 빋어온 조씨의 술담그기는 전통문화유산에 대한 사랑으로 집약되고 있다.
    지난 64년 전북대 농대에서 발효학을 전공, 우리 연구와 우리술 찾기에 전념해온 조씨는 25년간 국내 유수 주조회사에서 근무한 경험을 토대로 이강주의 재현 생산에 성공했다. 그 공로로 조씨는 97년 4월 전북도로부터 향토술담기 무형문화재 6호 지정받기도 했다. 그동안 신기술 개발과 용기 및 디자인 개발 등에 매출의 5%를 재투자해온 조씨는 향후 3년후에는 10%까지 확대투자할 계획이다.
    이러한 정신으로 술을 빚어온 이강주는 창업 첫해인 91년 1억9억천 5백만원의 매출을 기록한 이래 97년 22억 3천 5백만원으로 11배 이상의 매출신장을 기록하는등 급신장해왔다. 일본.미국등 해외시장을 개척하여 97년에만 3만불의 외화를 획득했다.
    그간의 우리술 연구결과를 정리한 다시찾아야할 우리의 술을 저술하기도 한 조씨는 예부터 내려오는 술을 빚는 도구, 용기등을 모아 민속 박물관에서 상설전시하고 있는등 전통문화 계승발전에도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다.
  • 전북 전주 고천주조전시관- 세계일보 1996/07/01
    우리나라 술의 제조역사를 한눈에 엿볼수 있는 주조전시관이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전주시 덕진구 원동 전주 이강주 제조장 2층에 마련된 고천주조전시관이 바로 그곳.
    지난93년 개관된 고천주조전시관은 우리나라 3대 명주 손꼽히는 전주 이강주 기능보유자인 인간문화재 고천 조정형씨(56)가 20여년 동안 수집한 2백 50여점의 술빚는 도구 및 관련자료 등을 전시해 놓고 있다.이 곳에는 조선시대에 쓰여졌던 토고리 누루틀 무쇠솥 장군총과 함께 술을 거르는데 쓰는 용수등 삼한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귀중한 도구들이 소장돼있다. 특히 이 곳에는 삼한시대에 사용된 각배(뿔로 만든 술잔)를 비롯 백제-고려시대의 마상배등 희귀하고 특이한 술잔들도 잘보존돼 있다.
    조정형씨가 주조전시관을 꾸미게 된 것은 술과 인연을 맺으면서부터 조정형씨 집안은 원래 선조 6대조부터 이강주를 직접 빚어 마셔왔다는 것. 지금까지 그 비법이 전승돼 맥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72년부터 전통주 발굴을 위해 전국을 누비는 술여행(?)을 다닌 조정형씨는 30여년동안 취미삼아 하나씩 수집한 자료가 점차 쌓이면서 우리의 주류문화의 뿌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