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문화재 6호 고천(古泉) 조정형 명인
- 약력
- 1964년 전북대 발효학과 졸업
- 前 주류업계 25년 근무(64년~89년: 목포 삼학소주, 전주 오성주조, 이리 보배소주, 제주 한일소주)
- 1980년 주조사 1급 취득
- 1987년 전라북도 향토무형문화재 제6호 지정
- 1996년 한국전통식품 명인 제9호 지정
- 1999년 신지식농업인章 5호 지정
- 2004년 (사)한국명인협회 초대회장 역임
- 現 전주 이강주 회장 (1990년~ 현재)
- 저서
- 1989년 『 다시 찾아야 할 우리술 』
- 2003년 『 우리땅에서 익은 우리술 』
- 2011년 『 명주보감 』
- 포상
- 1998년 재경부 장관 표창 (성실납세)
- 1998년 대통령 표창 (가공산업육성)
- 2002년 석탑산업훈장 (가공산업육성)
- 2010년 우리술품평회 대상 수상
- 2010년 농림부장관 표창 (식품산업정책)
- 2011년 우리술품평회 대상 수상
- 특허 등록 및 출원
- 2014년 팽화미를 이용한 전통주의 제조방법
- 2014년 이강 오디 증류주의 제조방법
- 2017년 이강주 분말의 제조방법 (출원 6.20)
- 가문에서 빚은 술, 이강주
- 이강주는 조선 중기부터 전라도와 황해도에서 제조되었던 한국 5대 명주의 하나이다. 이강주의 재료인 울금은 전라도에서 재배하여 왕실에 진상품으로 올렸기 때문에 우리 가문이 대대로 살아온 전라도 전주곳곳에서는 이강주를 많이 빚었다. 나의 선친께서는 대대로 고을 원님으로 계셔서 우리 가문에는 항상 문객들이 많았다. 문인의 집안으로 술을 즐겨 드시는 분들이 많았고 문인들의 모임이 많아 항상 이들을 대접하는 전통주, 이강주를 빚는 것은 가풍의 하나였다.
- 한국의 대표주로 소개되다
- 이강주는 <동국세시기>에는 봄에 먹는 술로, 조선 후기 서울의 세시풍습을 기록한 <경도잡지>에는 상류사회에서 즐겨 마시던 고급 약소주로 등장한다. 구한말 역사학자인 육당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서는 호산춘, 죽력고와 함께 한국의 3대 명주로 소개되기도 했다. 심지어 조선 시대 후기부터 내려오는 대표적인 가면극인 봉산탈춤에서도 ‘홍곡주, 이강주 내어놓자’라는 사설로도 등장한다. 조선말 고종 황제 때 한미통상조약부터 1971년 남북 적십자 회담의 만찬까지 한국의 대표주로 공식석상에서 여러 번 소개되었다.
- 오늘의 이강주를 새롭게 탄생시키다
- ‘술이 명주가 되려면 죽어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역설적인 말 같지만 맞는 말이다. 명주는 선친들의 대를 이어오면서, 그의 가르침과 노력으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나는 1964년 대학에서 발효학과를 전공하고 바로 술 공장에 입사하여 1급 주조사 기술 자격증을 습득하였다. 술 공장 공장장으로 30여년 동안 근무하던 중 우리 집안의 술을 상품화하여 세계적인 명주로 만들기 위해 200여종의 술을 직접 빚어 보고 자료를 정리하였다. 아울러 우리 가문의 술로 내려오던 이강주도 수백 번 반복 제조실험을 하여 품질을 향상시키고, 품질을 표준화하여 오늘의 이강주를 새롭게 탄생시켰다.
- 맛과 멋의 술, 이강주
- 조금 연한 노란색이 도는 25도의 약소주 이강주. 배의 알싸한 청량감과 더운 생강, 숙취를 보완하는 울금과 더불어 독특한 향취를 가지고 있는 계피가 어우러진 맛과 멋의 술이다. ‘이강주(梨薑酒)’라는 말도 토종 소주에 배와 생강이 들어갔다는 의미를 그대로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가미된 벌꿀은 술을 더욱 부드럽게 목으로 넘어가게 한다. 증류 과정을 거친 술이어서 오래 둘수록 맛이 둥글다. 또 숙취 해소에 좋은 배와 생강이 많이 들어가 마신 후에도 머리가 아프지 않은 ‘깨끗한’ 술로도 유명하다. 이강주의 또 다른 매력이라고 할까 아님 노하우라고 말할수 있을까. 술에 처음으로 울금을 사용했다는데 있다. 전통술 중에서 유일하게 울금을 사용하였는데 울금은 음과 양의 성질을 가지고 있어 숙취를 완화에 주고 혈압을 안정시키고, 몸의 컨디션을 조절해주는 약재의 역할때문에 숙취가 없는 좋은술로 알려진 이유인 것이다. 특히 우리가 음용할수 있는 신경안정제로는 카페인과 울금이 있는데 카페인은 향이 좋으나 습관성이 있고 울금은 습관성이 없으나 약초향이 있어 카페인은 차로 울금은 음식에 사용되고 있다. 중국황실이나 우리 왕실에서 특수 재배하여 사용하였는데, 지금은 재배법도 발달하고 울금에 대한 인지도가 많이 높아졌다. 이런 점이 이강주 만의 맛과 멋이 아닌가 싶다.
- 이강주를 상품화하다
- 이강주는 1988년 중요무형문화재 6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1989년 전통주를 상품화하는 제도가 만들어지면서 몇 가지 전통주가 처음으로 선을 보이게 되었는데, 당시에는 전통주 제조량이 많지 않아 술을 만들자마자 구매자가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로 전통주에 대한 인기가 높았다. 이강주는 배와 생강이 많이 들어간다하여 배나무 이(梨)자와 생강 강(薑)자로 하여 이강주라 이름지어 내여 놨는데,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씨 성을 가진 강주라는 사람이 빚어 만든 술인줄 알고 전화나 이메일상에서 이강주씨를 찾곤 하였다. 한번은 관공서에서 상호을 ‘이강주’로 쓰고 자필명을 ‘조정형’이라 하여 도장을 찍었는데, ‘이강주씨가 왜 조정형이라고 바꿔쓰냐’고 화를 내서 설명을 하고 크게 웃었던 적도 있었다.
- 이강주, 세계인과 함께 즐기다
-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의 역사와 음식문화에 대한 외국인들의 인식과 관심이 높아져 전통주 제조에 자긍심을 느낄때가 많다. 외국의 와인은 향을 위주로 발달한 반면 한국을 비롯한 동양은 맛을 위주로 발달된 차이점이 있는데, 이강주는 감칠맛이 좋다 하여 해외 팬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이강주를 빚어 온 지 언 30년이 지난 지금은 유럽 수출을 목표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직영 판매점을 개설하고 판로 개척에 적극 힘쓰고 있다. 전통적으로 이강주의 알코올 도수는 25이나, 전통의 맛을 유지하면서 서구인들의 취향에 어울리는 맛과 향을 조화시킨 19도 이강주와 높은 도수를 선호하는 중국인들을 위한 38도 이강주를 출시함으로써 세계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이강주를 개발하여 왔다. 이강주를 세계의 명주로 도약하기 위해 5년, 10년 숙성연구를 진행할 뿐 아니라 더불어 다른 한국의 전통주도 상생하며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